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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나를 품고, 나는 물든다 (5)
산울림산악회 산행 이야기
2019-05-28 오전 9:38:26 낙동뉴스 mail hys11440@naver.com



산이 붉어서 마음도 부끄러운 바래봉!!


- 산울림 산악회



싯다르타는 카필라성(城)의 왕자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모와 양모의 손에 길러지긴 하였어도 그가 왕자인 이상 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아버지인 정반왕은 그를 태자로 삼기 위해 스승을 두어 학문까지 익히게 하였으니, 그야말로 “엄친아”의 표본이었다.

그런 그가 12세 되던 해 처음 성(城) 밖으로 나와보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충격에 빠진다. 당신의 식탁에 기름진 음식을 올리기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는 농부를 보았고, 굶주린 나머지 썩은 음식을 먹는 부랑자들을 마주하였으며, 질병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중생을 목도하였고, 걸식으로 살며 삶과 죽음이 본디 하나였음을 체증하고 있는 수행자를 보았다.

안과 밖에 대해 혼란이 일어났으며, 가진 것과 가지지 않는 것에 대한 근본적 시름에 젖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열일곱 해, 그는 더 이상 이 근본적 물음에 대해 답하지 못하고 스스로 그 답을 찾기 위하여 성을 나와 중생과 함께 걸식하며 깨달음을 구현하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석가모니라 불리는 부처요, 그가 평생에 걸쳐 가난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걸식했던 그릇이 바로 “발우(鉢盂)”라고 불리기도 하고 “바리때”로 널리 알려진 나무 그릇이다.

지금이야 목기 기술이 발달해 스님들의 발우가 생긴 것도 토실하고 윤기도 나는 예쁜 그릇이지만, 당시는 그냥 나무 속을 생긴대로 파낸 지독히 못생기고 밋밋한 그냥 도구로서의 그릇이었다. 그러나 이 볼품없는 그릇이 없이는 한 끼의 공양도 얻을 수 없는 일, 따라서 구도자에게 있어 이 발우와 공양의 예는 그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이 엄중하고 귀히 여길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지금도 절간 수행자의 발우 공양법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엄숙한 의식이다. 거기다가 단 한톨의 밥알이라도 중생으로부터 얻은 것이니 귀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주어진 한 톨의 밥알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밑천이었으리니, 이 귀함이 곧 부처라 이를 담는 발우도 곧 부처라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지극히 밋밋하고 투박하게 생겼음에도 품은 뜻은 부처의 구도의 길을 그대로 가르쳐주는 발우, 즉 바리때와 똑같이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 바래봉. 지리산의 봉우리 중에 하나지만 해발 1,165m의 비교적 낮은 산인데다 능선 자체가 심심하고 변화가 없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 ▲ 바래봉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철쭉이 잠시 멈추게 한다  >


그러나 해마다 이맘때 펼쳐지는 철쭉은 가히 절경이다. 물론 지리산 철쭉이라고 하면 흔히들 세석평전을 치지만 소위 산 맛을 안다는 산꾼들은 이 능선에 핀 철쭉을 더 높이 친다.

우선 이곳 철쭉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붉고 진하다. 거기다가 높이 마저 어른의 허리께에서 한 키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꽃과 꽃을 보는 눈이 마주 한다. 눈과 눈이 같은 높이에서 마주칠 때의 설레임과 진심이 거기 있다. 마음과 마음이 정면으로 응시할 때의 부끄러움이 거기 있다. 눈높이가 맞고 마음이 마음을 마주하고 나면 내 본심을 고백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뺨이 붉어지고 마음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꽃도 붉고 내 마음도 붉어진다. 그래서 바래봉의 철쭉은 유난히 붉다. 그 붉음이 이곳에서부터 팔랑재에 이르는 오리(五里)길 내내 피어있다니 더디 올라갈수록 좋을 일이다.

그래서 이 능선이 비록 바리때를 닮아 밋밋하고 슴슴해도 그 지루함을 쉬이 잊을 수 있다. 거기다가 산길 모든 구간을 구들돌 같은 돌들로 만들어 놓아서 발밑에 걸리는 흙밥의 몽실함 보다는 무릎이 아프기 딱 좋은 형상이지만, 이 또한 꽃보는 즐거움으로 더러 잊어본다. 하기사 본디 싯다르타의 구도라는 것이 맨발에 탁발이었으니, 그에 비하면 오늘 바리때 구도(?)의 길은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을 일이다.



< ▲ 지리산에 군락을 이뤄 핀 철쭉의 그 화려함이 등산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


가면 갈수록 꽃은 더 붉고 햇살을 빗어 낸 바람은 이 화려함을 자꾸만 꼭대기로 밀어올린다. 비록 산 모양이 이래도 계절을 느끼는 산의 이치는 가지런해서, 이 산의 철쭉이 다 피기까지는 보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맞다면 이곳은 아마 피고 지는 모습이 함께 있으리라. 삶과 죽음의 경계가 다르지 않고 텅빈 것과 가득찬 것이 다르지 않으며, 생성과 소멸이 따로 있지 않음이 이 능선에 함께 있는 것이다. 구도자의 길을 끝까지 함께하는 바리때의 등어리에 곱게 앉아서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런 부끄러움은 다다른 정상은 때 맞추어 온 산꾼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잠시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자리가 없다. 그래도 모두들 올라오는 길에 꽃을 본지라 이 정도 불편함에는 투정 하나 없다.



< ▲ 바래봉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로 능선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다 >


그래도 볼 것은 봐야 한다. 인파를 비집고 까치발을 들자 저 멀리 구름 바다 넘어 천왕봉이 있고 노고단 반야봉 촛대봉들이 손나팔을 하고 우리를 연호한다. 바람이 한 자락 장쾌하게 지나갔다. 짜릿하다.

더 지체하다가는 인파에 치여 올라올 때 그 붉은 꽃들과 나누었던 고백들이 잊혀질까 두려워 하산길을 서두른다. 올라갈 때 마주 보던 꽃들이 내 등 뒤에다 잊지 말라는 꽃바람을 적셔준다. 나는 가만히 그 꽃바람에 적시운 채 세상으로 돌아왔다.


< ▲ 지리산과 바래봉을 돌아 산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왜인지 못내 아쉽다 >


운봉 주차장까지 내려와서야 큰 숨을 몰아 쉬며 뒤돌아본다. 내게 속살을 다 보여주었던 바래봉이 뭉특하게 거기 있다. 나는 빙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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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낙동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9-05-28 09:3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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