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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품제4信解品第四 (14)
법화경과 함께하다
2019-08-27 오후 3:27:26 낙동뉴스 mail hys11440@naver.com


    **'나는 없다'는 반야관...  마음의 병 치유

                   중생제도 즐거움이 진정한 열반..



    [해설]



      불교의 신앙체험을 대개 네 단계로 설명합니다. 믿음과 이해와 실천과 성취가 그것입니다. 이 신해품에서는 믿고 이해한 것을 위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갖는 일은 무엇인가 잘은 몰라 도 마음이 끌리고 믿음이 가야 합니다. 물론 이성적으로 불교에 대한 이론을 잘 알고 나서 마음이 끌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우선 하기 때문에 감정의 작용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이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해를 뒤로 하고 믿음을 먼저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이해가 없는 맹목적인 믿음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만일 하찮은 교의(敎義)이거나 나쁜 가르침이라면 자기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세상을 참혹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굳은 믿음과 아울러 바르고 넓고 깊은 이해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올바른 불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신해품에서는 중간 근기라고 표현되는 수보리, 가전연, 가섭, 목건련이 앞서 비유품의 설법을 듣고 나서 비로서 진정한 불법에 눈을 뜨고 뛸 듯이 기뻐합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배우고 닦은것을 비유를 들어 부처님께 여쭙니다. 그 내용은 궁자(窮子)의 비유, 또는 장자궁자(長者窮子)의 비유라고 하여 부처님의 교화의 전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문]



    그때 수보리와 마하가전연과 마하가섭과 마하목건련이 부처님에게 처음 보는 법을 들었습니다. 또 사리불에게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수기를 주시는 것을 보고 희유한 마음으로 기쁨을 이기지못하여 정중하게 예를 갖추고 공경히 존안을 우러러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저희들은 대중들의 상수로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미 열반을 얻었다. 더 할 일이 없다' 라고 생각하고 더는 최상의 깨달음을 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그동안 배운 공空과 형상이 없음(無相)과 지음(無作)이 없음의 이치만을 생각하였습니다.  보살의 법과 신통에서 노님과 부처님의 세계를 완성하는 일과 중생들을 제도하는 일은 마음에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부처님 앞에서 성문들에게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수기를 주시는 것을 듣고 마음이 환희하여 전에 없었던 기쁨을 얻었습니다.이제 홀연히 희유한 법을 들은 것은 매우 다행이며 큰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한량없는 보벼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은 듯 합니다."



    [경문 해설]



    궁자의 비유로서 자신이 불법 안에서 성숙하여온 모든 과정을 말하러고 합니다. 그것은 곧 부처님이 중생들을 교화하는 전 과

    정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미증유이며 최상의 도리인 사람이 그대로 완전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들이 그 동안

    최상의 법이라고 믿어 왔던 법의 내용을 경문은 약간 언급하였습니다. 즉 공과 무상과 무작입니다. 육백부 반야경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2백70자의 반야심경으로 대변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공空사상은 인간의 제반 문제와 온갖 고통들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최상의 처방책입니다. 혹 자는 그 2백70자 마저 '나는없다'라는 네 글자로 요약하여 읽습니다. '나는 없다'를 거의 주문을 외듯 외움으로서 반야관般若觀이 성숙하며, 어지간한 마음의 병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에 몸도 마음도 텅 비어 없는것으로 보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五蘊皆空 度一切苦厄)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이 '나는 없다'라는 반야관을 통해서 마음의 평정을 얻고 모든 아픔이 사라져서 편안함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경문에 소개된 수보리나 가섭이 공의 이치를 통하여 번뇌가 다 사라진 경지, 즉 열반을 얻은 것으로 불법의 궁극의 경지라고

    착각하였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은 편안할지 몰라도 이웃의 아픔은 치료할 수 없기에 중생들을 제도하는 일

    을 즐거워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부족했던 과거를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신해품제4 2장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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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낙동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9-08-27 15:2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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